일단, 창 밖으로는 이런 골목길이 보인다. 집과 집이 붙어 있는 듯하지만, 바르셀로나의 햇빛과 바람이 말도 안되는 신선함(?)으로 쏟아져 내린다. 쾌적 그 자체. 공기나 바람이라는 걸 피부에 닿으면서 기분이 좋다- 라고 느낀 건 한 백만년은 더 된 것 같다. 물론, 내 전생의 전생에, 그리고 전생을 끄집어 내서 말이다. 사람으로서만 태어났다가 죽었다 라는 걸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리고 베란다에 나무와 꽃과 이런저런 풀들을 잔뜩 내놓는 정서라서- 공기 중에 실려오는 냄새가 장난아니다.


에어컨이 있는 곳이었는데- 잘 켜지는 않았었다. 벽에 다리를 기대 올리고, 한가롭게 침대에 누운 채로- 천정에서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쐬다보면- 기계적인 바람이 뭐 그닥, 그렇게까지, 엄청 간절해지지는 않았었다. 게다가 기계적인 차가운 바람은 원래부터 싫어하기도 하고.

습기가 없는 나라라서 그런지- 그때만 그랬는지는 뭐라 말 할 순 없지만, 어쨌거나 있는 6일 동안에는 선풍기만으로도 충분했다.

뭔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걸 아무 생각없이 올려다보고 있자니- 여름날의 고양이처럼 한없이 졸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졸고 있기에는 바르셀로나에서의 내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왜 나는 휴가를 고작 7일 주고 생색내는 직장엘 5년이나 다니고 있는 걸까?

돈인가?

돈이겠지.


람블라스 거리와 굉장히 가깝...가깝다기 보다 바로 그 옆인 곳이라서- 잠깐 들어와서 바로 위의 저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다음 가우디로 가기 전에 저 책을 읽고 나간다던가- 했었다. 가우디 투어를 할까하다가, 바르셀로나에서만 6박 있을거니까- 혼자 읽고, 혼자 몇시간씩 있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해서 가져왔던 책인데 와서 보니, 역시 그냥 침대가 아니라 책 읽는 침대라서 저 책도 있었다! 는 건 혼자만의 안타까운 비밀.

다같이 하는 가우디 투어를 하지 않고, 셀프투어를 해서 하루에 한 곳 아니면 두 곳 정도 다녔는데- 그때마다 지나는 길에 혼자 이 곳으로 들어와 씨에스타를 즐기고 충전한 다음- 다시 나가고, 뭐 그랬었던 것 같다. 가 아니라 그랬었습니다. 



그때 같이 있었던 민박식구(?)들과 갔었던 동네카페. 뭔가 색감이랑 그림이랑 폰트랑- 마음에 들어서 찍었다.





버터와 쨈을 듬뿍 바른 따뜻한 스콘과 예상보다 진하지 않았던 부드러운 커피와 한국과 다르게 날쌘 비둘기들과 배가 통통하게 나온 참새와 말도 안되는 분홍색을 그럴싸하게 소화한 옆테이블의 할아버지씨와 일요일 오전의 한가로움과 카페 광장에 늘어서 있던 나무와 햇살과 바람과- 뭐 이런 것들이 한데 모여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까지, 라기 보다는 앞으로도 계속일 것 같다.

저 모든 것들이 좋게 느껴지는 건, 옆 테이블에서 양해를 구하고 다 같이 의자를 끌어다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었던 그날의 기억때문이겠지?


람블라스 거리도 물론 예쁘고, 좋았었다. 폭력적으로 내리쬐던 햇볕에 눈을 거의 못뜰 지경이었고(선글라스를 안가져감. 그리고 안 삼), 바람은 습기하나 없이 시원하고, 대단한- 많은 꽃을 가져다 놓진 않았었지만- 걸을때마다 공기중에서 꽃을 느낄 수 있었던 가게들도 예쁘고- 이국적인 사람 구경도 재미있고- 말도 안되게 커다란 잔에 채워져 있는 레몬맥주와 샹그리아도 재밌고.

하지만 책 읽는 침대가 있는 골목, 그 뒤의 골목, 그 옆의 골목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람블라스 거리와는 단지 약간의 벽이 있을 뿐인데도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차분한 공기 같은게 있었다.


책읽는 침대에서- 식탁 맞은편에 보이는 벽에 붙은 엽서가 너무나 탐이나서, 마지막날 저도 샀다! 아침을 못먹는 생활(안먹는게 아니라, 못 먹는!)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차려주는 아침밥은- 감동입니다.

사진이 없는 건, 먹느라고 못 찍,,었다기보다 찍어야 겠다 라는 의식의 흐름이 1도 개입되지 않고 먹은 탓이 크다. 버섯볶음이랑 아스파라거스 피클이랑 취향대로 고기를 골라먹을 수 있었던(다먹었지만) 돼지고기볶음이랑 장어새끼(?)가 든 전이랑, 시원한 미역국, 해물이 듬뿍 든 된장국- 양 껏 먹을 수 있었던 쌀밥...ㅠㅠㅠㅠ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지금까지 아침이란 걸 먹은 적이 없다. 아마 계속 이럴듯. 그리고 누군가가 차려주지 않은 한식은- 나한테는 사치다. 

슬프네.



저 달력도 탐이 났었지만, 까먹는 탓에- ...


마지막으로 제가 6일 동안 있었던 방의 창문이다. 아침에 눈 뜨면 저 창문부터 열었었다. 

순식간에 안으로 들이닥치는 아침공기가 너무 좋았다. 한낮의 골목길에서 알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용, 조용하게 들려오고- 선풍기는 묵묵하게 돌아가고, 창가에 드리워진 레이스 커튼은 바람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고-

다시 생각해도 좋은 기억만 가득이다.


하지만-


다시 한국, 그리고 서울에서의 지금은


바르셀로나가 꿈처럼 느껴진다고 했었는데, 여기오니까 역시 꿈이었던 것 같다. 다시 날카로워지고, 사나워지고- 한 마리의 하이에나가 따로 없습니다. 아이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는 그 순간부터, 순식간에 암흑이 되더니- 돌아온 인천에서는 잔뜩 흐리고, 습기만 가득이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사람들은 또 이리저리 밀치기 시작하고- 뭐, 그랬다.

힐링이 됐어? 너무 좋았지? 라고 묻는 말에는 그냥 끄덕끄덕 하지만-

사실, 억지로 날개를 잡아 비틀려서 땅으로 곤두박질 쳐진 나태한 이천십일공칠이팔번째 천사가 된 기분이다.



나는, 왜, 여기서- 이토록 화를 내며 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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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리어 샀다!(이제 빌리지 않으리)


: 캐리어의 뜻밖의 여정은, 내가 화물칸에 타질 않아 잘 모르겠으나- 뭔가 플라스틱의 몸체가 이리저리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캐리어의 시점에서 뭔가를 보거나, 쓰거나 하는 것도 재미가 없진 않을 것 같다- 한 두세번만 더 여행을 다니면 반드시 어딘가가 박살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다.


2. 터키항공 예약했다!(새벽출발 이른 오후 도착인 시간이 너무 맘에 드는데다가, 사실- 여기 말고는 현실적으로 내 상황에서 예약 할 수 있는 항공사가 전무했다)


: 오버부킹이 되지 않았고(근데 나는 백일전에 좌석지정도 하고, 24시간 온라인 체크인도 했었어서- 만약 무슨 일이 생겼다면 나라는 인간이 할 수 있었을 건 없었을 듯-), 터키까지 가는 좌석이 내 옆으로 주루룩 비는 바람에! 다리를 쭉 뻗고, 쾌적하게. 하지만 그 후로는 옆에 누군가가, 또 옆에 누군가가, 그리고 반드시 누군가가 내 옆에 있었다. 

좁았지만- 견딜만한 좁음? 예전에 케세이퍼시픽 탔을 때의 악몽이 너무 짙어서인지, 터키항공은 결과적으로 만족.


터키항공에 대한 건 자세히, 나중에.


3. 좌석지정메일 예약 걸어놨다!(몇 백년 전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까마득한 옛날, 친구와 유럽배낭여행을 갔을 때 케세이퍼시픽을 이용했는데- 압사당할 뻔 한 기억이 있어서, 좋은 자리를 받아야 한다는 일념 + 생각했을 때 해놓지 않으면 반드시 까먹는 머리라서)


: 거기는 지정이 안돼요- 라는 메일을 돌려받긴 했지만, 어쨌든 다시 지정한 곳으로 모두 지정해줬다.


4. 아시아나 항공 가입!(마일리지 놓치치 않을 거예요)


: 적립이 안되는 항공권입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놓친듯?


5. 바르셀로나 숙소 예약!(한 곳에서 6일 동안 있기- 이리저리 짐 싸들고 옮기기 귀찮아하는 마음이 너무 크다)


: 여기도 나중에 자세히. 바르셀로나 책읽는 침대! 다음에도 또 다시 갈 곳.


6. 터키항공 24시간 온라인체크인 준비도 끝!(준비라기 보다, 한 번에 슥 들어가서 파파팟 하고 체크인할 흐름)


: 근데 막상 갔더니 온라인체크인 줄이 없어서,,,


이제 고양이를 부탁할 누군가를 찾아야지.


: 길센세가 해 줬다.


바르셀로나에서 하고 싶은일.


1. 가우디투어


: 가우디 셀프 투어


2. 달리미술관 + 그쪽 근교


: 갔다. 갔다. 하지만 살짝 망했었다.


3. 플라멩고 공연 + 기타 공연


: 플라맹고와 기타 공연을 같이 봤다.


4. 1일 1타파스, 아니 2,3,4,5,6 타파스- + 술


: 매일 같이 타파스는 아니었지만, 술은 매일 같이 마심.


and go on- 


혼자 여행가는 게 처음인데다, 혼자 비행기 타는 것도 처음인데다, 혼자 환승하는 것도 처음인데다, 혼자 뭘 계획(누군가가 계획을 반드시 짜고, 나는 그 계획 안에서 내 마음대로 했었는데)하는 게 이렇게 신경 쓰이는 줄, 이제 알았다.





결론 : 굉장히 귀찮았었지만,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은.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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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ga :

청소하다

2016. 3. 10. 15:18 from 일상/하다



귀찮다, 귀찮도다, 귀찮으니, 라는 핑계로 빨래도 미루고, 설거지도 미루고, 화장실 바닥 청소도 미루고, 후추 화장실 청소도 미루고- 방 청소도 미루고-


했는데,


갑자기 청소의 여신이 강림하셔서 파바밧- 하고 저 위에 나열한 것들을 한꺼번에 그리고 격렬하게 끝냈다.


새로 사 본 꽃담초 향이 너무 좋다. 빨래에서 나는 기분좋은 향이 집 안에 퐁퐁.


그리고 저 위에 나열한 귀찮은 것을 끝내고 나니, 모카포트로 만든 커피가 마시고 싶어져서 원두를 갈고 우유를 데우고 앵무새설탕을 꺼내고 안캅 에스프레소 잔을 데웠다. 그리고 우유 거품까지 만들었다!


오늘 주어진 에너지를 다 써버린 기분이네.


바끼를 사야하나, 라고 벌써 일년째 고민중이다.



스페인에서는 바르셀로나에만 있을 예정이라서,


쿠킹 클래스를 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데- 영어를 잘 못하면 굉장히 머리 안이 복잡해진다고 해서, 


끙.


영어를 잘 못해도, 눈으로 보면 어케 하는지는 습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영어의 신이 강림해주시진 않을까? 그때만 잠깐이라도?


타파스투어도 있더라.


술이 들어가면 잘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왜 저 말이 나왔지?,, 어쨌거나 뭐 이런저런 공부를 해야해서 책상에 앉았는데 저렇게 냉큼 올라와앉아 햇볕을 쬐는 후추의 한 컷도 찍어보았다.




어제만든 야매폴포.


아니다, 야매라는 말도 붙이기 좀 그렇다.


로즈마리를 꺼냈다가, 된장찌개 끓이고 남은 달래를 넣었고, 파프리카 가루가 없으니 고춧가루를 뿌렸고- 토마토도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으니, 그냥 문어요리라고 하자.


감자랑 문어의 조합이 괜찮을라나? 했는데 의외로 눈이 팟! 떠지는 맛이 났다.


감자는 포실포실하고 문어를 쫄깃쫄깃하고(최상의 맛을 내는 문어가 아니었음에도)- 달래는 향긋하고, 토마토는 맛있게 달고.



+ 내 다리를 베개 삼아 자는 후추의 뒷통수 컷. 돼냥이라서 자다가 신음을 하며 깨는 나날의 반복이다. 새카만 뒷통수가 얄미롭게 귀엽다.



Posted by iga :